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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Империя


Flag of Russia


Coat of Arms of the Russian Federation
(국기) (국장)
지도 그림 Russian Federation (orthographic projection)
수도 Петроград
최대도시 Москва
공용어 러시아어
타타르어
우크라이나어
한국어
중국어
정부형태 연방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지도자 칭호 황제
지도자 이름 니콜라이 2세 (러시아 연방 제국)
주권 독립국가
정부수립일 1918년 3월 13일?
면적 20 956 534 ㎢
인구 216 534 347 명
인구조사년도 2012년
인구밀도 10,33 명/㎢
국내 총생산 통계 년도 2012년
국내 총생산 3 305 180 272 608 $
일인당 국민 소득 15264 $
일인당 국민 소득 15264 $
통화 рубль
도메인 .рф
국제전화 +7?






















러시아 연방 제국(러시아어 :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Империя)은 아시아유럽에 위치한 국가로써 전 세계 국가 중 면적이 가장 넓다.

지리[]

영토의 1/4는 동유럽에 속하며 영토의 3/4는 북아시아에 속한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는 핀란드 공화국, 에스토니아 공화국, 라트비아 공화국, 백러시아 공화국, 우크라이나 공화국, 그루지아 공화국, 카프카스 토후국, 이란 이슬람 공화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몽골 공화국, 중화민국,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고 해상으로는 노르웨이 왕국, 미합중국, 일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과 접해있다. 러시아 연방 제국은 서쪽으로부터 1/4 부분에 우랄 산맥이 있어서 아시아와 유럽을 가른다. 우랄 산맥의 길이는 약 2500 km이고 최고 높이는 1895 m이다. 발트해, 흑해, 카스피해, 북극해, 오호츠크해, 베링해의 일부를 영해로 가지고 있다. 영토는 세계에서 1위인 나라다. 남극보다 넓다. 연방 제국의 영토는 내부에 위치한 호수나 강이나 저수지나 운하를 포함하여 17083117 제곱 킬로미터이다. 연방 제국의 영공은 영해와 영토의 상부에 존재하는 대기로 규정된다. 기후는 오호츠크해, 베링해, 북극해 부근에서 한대 기후가 나타나고 코카서스 지방을 제외한 동유럽 지역 러시아와 내륙 북아시아 지역의 러시아에서는 냉대 기후가 나타나고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온대 기후가 나타난다. 러시아는 산유국으로써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국이다. 석탄 매장량도 세계 1위이다. 천연 가스 생산량도 세계 1위에다가 수출량마저 세계 1위로 러시아 연방 제국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는 러시아 인접 국가들 등에 가스관을 통하여 많이 수출된다.

경제[]

러시아 연방 제국은 1918년의 개혁 이후 계속 시장 경제 정책을 추진해왔다. 소련 시절의 기관들 대다수가 민영화되었으며 민영화로 재벌들이 생겼다. 러시아 정부는 경제가 가파르게 상승하였으나 국민 총생산의 3/10이 모스크바 지역에서 나온 것이다. 연방 제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9위다. 러시아 연방 제국은 동맹국이자 인접 국가인 백러시아 공화국, 카자흐스탄 공화국,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타지키스탄 공화국과 함께 유라시아 경제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들 5개 나라는 회원국간에 무비자로 이동이 가능하고 관세동맹 및 에너지개발협력 및 운송 동맹을 맺었다. 준회원국으로는 우크라이나 공화국, 아르메니아 공화국, 몰도바 공화국이 있다. 최근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유럽 연합처럼 유라시아 경제 공동체도 단일 통화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고 현재 논의 중에 있다. 연방 제국 정부 측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연방 제국은 납세자의 생활 수준과 관계없이 최저재산세와 최고재산세가 모두 13%로 같은 단일세율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고소득층의 조세 회피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압하스, 알바니아, 안도라, 앙길라, 백러시아, 벨리즈, 볼리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동티모르, 에스토니아, 그루지아, 그린란드, 그레나다, 건지 섬, 가이아나, 헝가리, 자마이카, 저지 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마케도니아, 마다가스카르, 모리타니, 몽골, 몬테네그로, 나고르노 카노바흐, 루마니아, 세인트 헬레나 섬, 사우디아라비아, 세르비아, 세이셸, 남오세티아, 트란스니스트리아, 트리디나드 토바고, 투르크메니스탄, 투발루, 우크라이나에서 시행 중인 정책이기도 하다.

사회[]

민족의 82.6%는 러시아인이고 나머지는 3.5%의 타타르인, 2%의 우크라이나인, 1.1%의 바슈키르인, 1.1%의 추바슈인, 1%의 체첸인, 0.78%의 아르메니아인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결국 85% 가량이 동슬라브족이다. 이 점에서 러시아 연방 제국은 부분적으로 다민족 국가라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타타르인, 바슈키르인, 추바슈인, 체첸인, 아르메니아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거주한다. 2012년 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연방 제국 국민의 42.5%는 동방 정교회(러시아 정교회, 기타 나머지 정교회) 신자이다. 무교인 사람도 38%나 된다. 이슬람교도는 6.5%이다. 동방 정교회를 제외한 기독교 신자는 4.1%이다. 기독교가 생기기 전의 고대 종교를 믿는 사람도 1.2%를 차지한다. 불교 신자는 0.5%이다.

국방[]

연방 제국 육군 28만명 연방 제국 해군 11만명(해병대 16000명, 해군 항공대 60000명) 연방 제국 공군 13만명 연방 제국 전략로케트군 15.5만명 연방 제국 항공우주군 15만명

역사[]

서기 400년 ~ 600년 -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동슬라브족이 현재의 유럽 부분 러시아의 서부와 백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정착 862년 - 키예프 루스 성립, 이들은 러시아 서부와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폴란드 동남부, 에스토니아 일부, 라트비아 일부를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해갔다. 하지만 11세기 이후 분열하여서 세력이 약해진다. 1220년 ~ 1240년대 - 몽골족의 침략으로 모스크바 대공국을 제외한 키예프 루스 산하 공국들 대다수 멸망 1380년 - 쿨리코프 전투에서 몽골 제국의 일부인 킵차크 한국을 모스크바 대공국 군대가 격파, 이후 몽골로부터 독립을 성취 1547년 - 이반 4세, 모스크바 대공국이 루스 차르국으로 국명 변경 1598년 - 이반 4세, 사망 1610년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하여 차르 살해 및 내정 간섭 및 침공 당함, 모스크바 점령당함 1612년 - 로마노프 가문이 이끄는 저항군이 자력으로 모스크바 해방 1613년 - 저항군을 이끌던 이반 4세의 부인과 자매 관계인 이기타 로마노프의 손자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루스 차르국 전국회의에 의해 차르로 선출됨 1618년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 종료,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루스 차르국 정복 계획은 실패, 루스 차르국은 스몰렌스크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빼앗김. 1632년 ~ 1634년 - 스몰렌스크 탈환을 위해 루스 차르국이 전쟁을 벌였으나 탈환은 실패로 돌아감. 1649년 - 농노제를 법제화 시켜 국민의 거주지 이전의 자유 침해 1654년 - 우크라이나의 지도자 보그단 흐멜니츠키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하자 같은 정교회 국가인 루스 차르국에 보호 요청, 이후 우크라이나를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부터 해방 1654년 ~ 1667년 -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했고 이에 우크라이나 지도자에게 보호를 약속한 루스 차르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전쟁을 벌임. 장기간의 전쟁 끝에 우크라이나 해방 확정과 스몰렌스크 탈환. 1689년 - 시베리아까지 영역을 넓힌 루스 차르국이 청나라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국경을 확정 1713년 - 표트르 1세가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함. 1717년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내전을 지원하여 폴란드를 보호국화 1721년 - 표트르 1세에 의해 루스 차르국이 러시아 제국으로 국명 변경, 이후 서구화 1725년 - 표트르 1세의 황후가 예카테리나 1세가 됨 1727년 - 표트르 1세의 손자(황태자의 아들)가 표트르 2세가 됨 1730년 - 표트르 1세의 누나가 안나 여제가 됨 1740년 - 안나 여제의 조카인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아들이 이반 6세가 됨 1741년 - 표트르 1세의 딸인 옐리자베타 여제가 혁명을 일으켜 여제가 됨 1762년 1월 5일 - 표트르 1세의 손자(딸의 아들)가 표트르 3세가 됨 1762년 7월 9일 - 표트르 3세의 부인 예카테리나 2세가 남편을 몰아내고 여제가 됨, 농노제 강화 1795년 - 보호국이 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 일부를 흡수 1796년 - 아들 파벨 1세가 황제가 됨, 나폴레옹이 독재하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다가 귀족들에게 암살당함 1801년 - 아들 알렉산드르 1세가 황제가 됨. 1804년 - 영국이 주도하는 대(對)프랑스 동맹에 가담 1812년 6월 - 프랑스 제국에 의해 본토가 침공당함. 황제가 세운 전략은 서쪽에서 잘 수비하다가 서서히 동쪽으로 후퇴하는 장기전을 통해 전쟁을 겨울까지 끌어서 프랑스군의 물자를 소모시키고 혹한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후퇴시 프랑스군에게 아무 물자도 노획되지 않기 위하여 식량과 가옥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리고 전군이 후퇴하는 게 아니라 일부 병력을 매복시켜서 프랑스군을 기습공격했다. 결국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프랑스 제국군 2만명이 전사했다. 1812년 9월 14일 - 프랑스군 6만명과 러시아군 4만명이 죽은 모스크바 전투 끝에 모스크바에 프랑스 제국군이 입성했으나 스몰렌스크 때처럼 식량과 가옥은 이미 모조리 불탐. 러시아 제국 육군 원수 미하일 쿠투조프는 프랑스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고 남동쪽으로 후퇴함. 1812년 10월 - 알렉산드르 1세는 프랑스 제국과의 화평을 거절했고 결국 식량도 불타 없어진데다가 추위가 극심해져 나폴레옹은 후퇴를 명함, 이 때 러시아군이 기습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힘 1812년 11월 - 나폴레옹 1세는 군대를 해산하여 프랑스군이 최대한 빨리 도망치도록 허용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만 프랑스군 중 살아 돌아온 이는 3만명 밖에 없음 1813년 - 육군 원수 미하일 쿠투조프 병사, 이후 알렉산드르 1세가 직접 지휘하여 프랑스군을 추격함. 1814년 3월 - 러시아 제국군, 파리 입성, 끝내 승리를 거둠. 1825년 - 알렉산드르 1세의 병사로 동생 니콜라이 1세가 즉위. 1831년 - 폴란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군대를 불러 강제 진압, 이후 부분적으로 자치권을 갖고 있던 폴란드 왕국을 멸망시키고 본토로 편입시킴 1849년 - 헝가리 왕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지원군을 보내 합스부르크 가문 인사들을 구출함, 이후 러시아 제국은 유럽에서 강대국이 됨. 1853년 - 오스만 제국에 의해 크림 반도를 빼앗기고 이후 흑해는 중립 지역이 됨 1855년 - 아들 알렉산드르 2세가 즉위 1861년 2월 19일 - 농노 해방령 선포 1863년 1월 10일 - 폴란드 차르국(바르샤바, 루블린을 기반으로 한 러시아령 폴란드 내륙 지방)에서 반란 발생 1863년 - 대학에 자치권 부여 1864년 3월 30일 - 폴란드 차르국에서 발생한 1월 항쟁 진압 완료, 붙잡힌 폴란드인 중 396명 처형, 18672명 시베리아로 유배, 가톨릭 성당의 재산 전부 몰수, 폴란드 차르국에서 폴란드어를 사용 금지하고 폴란드 차르국에서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강제, 폴란드인에게 자치를 부여하던 폴란드 차르국은 강제 멸망 당하고 기존 폴란드 차르국 지역은 10개 주로 쪼개져서 러시아 제국군에게 강압 통치를 받게 됨 1864년 -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게 됨 1864년 - 사법부 독립 1865년 - 검열 완화 1870년 -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지방 자치 시행 1874년 - 농노들을 징집하여 25년 복무하게 하던 예전 군대를 육군 6년/해군 7년으로 단축시키고 농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러시아 제국의 남성을 징집함 1877년 -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3년 전 개혁된 군대 덕분에 승리하여 발칸 지역 국가들의 독립과 제국의 영토 팽창을 일으킴 1881년 3월 1일 - 알렉산드르 2세는 수많은 개혁을 했지만 제국 의회, 정당, 이익 단체의 설립 허가는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결국 이 날 제국 의회 설립을 검토하는 위원회 개설을 명했다. 1881년 3월 1일 - 그가 위원회 개설을 명한 사실을 모르던 급진적 공화주의자들은 바로 그 날 폭탄 두 개를 설치해서 황제를 암살하려 했다. 다행이도 첫 번째 폭탄이 터질 때는 프랑스 제국의 나폴레옹 3세가 친선의 의미로 선물한 방탄 마차 안에 황제가 타고 있어서 무사했으나 호위병들과 마부들은 죽거나 다쳤다. 황제는 이들의 안전을 확인하려 마차 밖으로 나갔고 이 때 두 번째 폭탄이 터져서 황제는 암살당하고 말았다. 1881년 3월 2일 - 알렉산드르 2세의 차남이 알렉산드르 3세로 즉위, 차남 알렉산드르 3세는 황태자 시절부터 아버지의 개혁에 반대해왔다. 결국 그는 알렉산드르 2세가 실시한 지방 자치, 검열 완화, 보통 교육을 일부 축소시켰다. 또한 독일어, 폴란드어를 탄압했다. 1884년 5월 3일 - 알렉산드르 3세가 유대인들을 러시아 제국 본토에서 강제 추방하고 폴란드, 리투아니아, 몰다비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지방에 위치한 체르타 오세들로스티(Чертa осeдлости, 유대인 강제거주구역)에서만 살게 하는 법안 발표 1887년 3월 1일 - 사회주의자당 소속 혁명가들이 알렉산드르 2세 암살 6주기를 기념하여 알렉산드르 3세도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3월 31일 블리디미르 레닌의 형 알렉산드르 일리치 울랴노프(Александр Ильич Ульянов)를 포함한 5명이 처형당했다. 1891년 3월 19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 시작 1891년 4월 29일 - 알렉산드르 3세의 아들 황태자 니콜라이가 일본 제국을 방문하여 시가 현에 있는 호수 비와 호를 관광하고 돌아오던 중 경호를 담당하던 일본 경찰 순사 쓰다 산조에게 머리에 칼을 맞아 부상을 입었다. 이후 쓰다 산조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쓰다 산조가 암살을 시도한 이유는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사할린, 쿠릴 열도 관련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1894년 10월 20일 - 알렉산드르 3세, 신장염으로 사망 1894년 - 황태자 니콜라이가 니콜라이 2세로 즉위 1904년 1월 27일 - 일본 제국이 러시아 제국이 조차한 부동항 뤼순 항과 제물포를 공격하여 극동 함대에 작은 피해를 입힘. 이 날 저녁에는 일본 제국군이 인천에 병력을 상륙시켜서 조선 반도에 병력을 배치함 1904년 3월 31일 - 전함 페트로파블로프스크에 탑승한 스테판 마카로프 부제독, 일본 제국 함대 뒤쫓다 기뢰에 걸려서 사망 1904년 4월 17일 ~ 1904년 4월 18일 - 러시아 제국이 점령하던 만주 지역에 공세를 취하기 위해 일본군이 압록강을 건너려고 시도, 이와 동시에 만주 해안에 곳곳에 부대를 상륙시킨 덕에 작전 성공, 결국 이후 러시아군은 뤼순 항으로 퇴각함 1904년 5월 1일 - 일본 해군이 전함 2대를 이끌고 뤼순 항을 공격하려다가 러시아 해군이 설치한 기뢰에 걸려 전함 야시마는 450명의 승조원과 함께 침몰하고 후츠다도 피해를 입어 견인되었다. 이후 일본군은 해군을 동원하여 뤼순 항에 대한 해상 봉쇄를 시작하였다. 1904년 7월 17일 - 일본 육군이 9만명의 보병과 포병을 동원하여 뤼순 항에 대한 공세 시작 1904년 7월 25일 ~ 1904년 7월 27일 - 일본군이 뤼순커우 구의 고아 고지를 공격하려 했으나 1차 공격은 러시아 제국의 신형 기관총 맥심 기관총 부대 때문에 엄청난 인명 손실을 내고 실패, 이후 포병의 지원 아래 2차 공격을 감행하여 결국 고지를 빼앗겼다. 1904년 7월 28일 - 러시아 해군은 뤼순 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하려 했으나 황해 인근에서 일본 해군에게 걸려서 황해 해전을 벌임. 결국 전술적으로는 무승부였으나 러시아 제국의 빌헬름 비트게프트 해군 제독이 전사했고 러시아는 292명, 일본은 226명의 전사자를 냄. 이 해전 때문에 러시아 해군의 탈출은 수포로 돌아갔다. 1904년 12월 23일 - 황해 해전 이후 일본 제국은 뤼순 항은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포위하였고 바다에서는 해상 봉쇄, 육지에서는 포격으로 점점 뤼순 항을 고립시켰다. 결국 뤼순 항에 있던 러시아군은 이 날 항복하였다. 1905년 1월 9일 - 노동자들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위를 하다가 군인들에게 일제사격 및 포격을 당하였다. 결국 천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사망하였다. 1905년 5월 14일 - 발트 해에 있던 러시아 제국 해군 발트 함대는 희망봉을 돌아 엄청 먼 거리를 경유하여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지원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쓰시마 해협을 지나던 도중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일본 제국 해군 함대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조선의 해군 사령관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을 따라하여 러시아 해군 전함들을 둘러싼 후 일시집중타 포 사격을 가하였다. 결국 러시아 제국의 발트 함대는 괴멸되고 말았다. 일본 해군은 117명이 전사하고 583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러시아 해군은 4380명이 전사하고 5917명이 부상을 입어서 비교조차 불가능한 대패를 당하였다. 러시아 해군은 전투 당시 투입된 전함 수가 일본 해군을 압도했지만 일본 해군은 전함보다 가볍고 속도가 빠른 순양함을 더 많이 투입하였기에 학익진 전법 구사가 가능하였다. 이 전투 후 3척의 발트 함대 소속 함정만 탈출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수 있었다. 쓰시마 해전에서 패배한 후 사할린 섬마저 일본 제국에게 빼앗겼다. 1905년 8월 23일 - 미국의 중재로 일본 제국과의 강화조약을 맺었다. 결국 러시아 제국은 요동 반도의 조차권을 일본 제국에게 빼앗기고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고 본토인 사할린 섬의 남부를 빼앗겼다. 1914년 ~ 1915년 - 제1차 세계 대전에 영국, 프랑스 공화국, 세르비아 왕국과 동맹을 맺어 참전했으나 탄넨베르크 전투 등에서 패배하여 병력 140만명이 전사하고 97만 6000명이 포로가 되었다. 1917년 2월 23일 ~ 1917년 2월 27일 - 노동자들이 빵을 달라고 시위를 하여 2월 혁명이 일어났다. 일선 군인들은 처음에 사격을 지시했으나 시위대에 사격을 한 장병들은 거의 없었다. 결국 러시아 제국 경찰관들이 노동자들에게 사격을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에 돌로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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